`낙서 테러`에 몸살 앓는 도심…범인 잡아도 복구는 `나몰라라`

사회

이데일리,

2025년 6월 26일, 오후 07:13

[이데일리 정윤지 기자] 길거리 전광판이나 지하철 안, 건물 등 공공 시설물이 낙서로 훼손되고 있다. 가수 보아에 대한 욕설을 담거나 이른바 동덕여대 사태처럼 단순 의사표시를 넘어서는 ‘테러’ 행위까지 일어나기도 한다. 낙서는 엄연한 범죄 행위인데, 낙서한 당사자가 스스로 지우는 게 아니라면 복구도 쉽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 건물과 시설물에 가수 보아를 모욕하는 욕설이 담긴 낙서가 적혀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강남·광화문·이태원 곳곳 낙서로 몸살

2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가수 보아(본명 권보아·39)를 향해 모욕적인 낙서를 한 30대 여성 A씨를 수사하고 있다. A씨는 지난 6일부터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광진구, 강동구 일대 정류장이나 전광판, 건물 등에 보아를 모욕하는 욕설을 반복적으로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26일에는 서울지하철 4호선 열차 안에서 한 남성이 ‘자연이 먼저냐, 종교가 먼저냐 인간덜아’ ‘면이 먼저냐?’는 등의 낙서를 해 서울교통공사 측으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단순한 낙서를 넘어선 조직적인 행동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동덕여자대학교에서는 남녀공학 전환에 반대한 일부 학생들이 학내 바닥과 벽면에 유성 래커로 시위성 문구를 남겼다. 학교는 해당 학생들을 즉시 경찰에 고소했다.

수사로 이어진 사례 외에도 도심 곳곳에서도 낙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8일 이데일리가 찾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는 늘어진 가게 벽면과 도로 옆 변압기 등 시설물 곳곳에서 영문이나 한글 등으로 된 낙서가 남아 있었다.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도 탄핵 정국 당시 작성된 낙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도시 미관을 해치는 낙서에 시민의 불쾌감도 크다. 이태원에서 옷가게를 하는 40대 심모씨는 “외국인도 많고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한때는 눈만 뜨면 새로운 낙서가 생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잡화점 직원 안모(39)씨도 “낙서가 있으면 길거리가 지저분해 보여서 좋진 않다”며 “작은 낙서들이 모이고 모여서 결국 더러워진다고 하더라도 낙서를 한 사람을 찾을 수는 없어서 직접 지우거나 방치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동덕여대 사태 역시 반년여가 지났지만 복구 비용과 손상된 시설물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시설물에 낙서가 남아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범인 잡아 처벌해도 복구는 난항

이 같은 낙서는 엄연한 범죄 행위다. 보아 낙서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A씨에 대해 재물손괴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A씨는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의 미디어폴 등에 지워지는 펜으로 낙서했는데, 사건이 알려지고 팬들이 나서 낙서를 지웠지만 일부 낙서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장에는 팬들이 종이로 가려놓은 흔적도 여전하다. 동덕여대 사건을 수사한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학교 측의 고소 취하에도 지난 24일 학생 22명을 재물손괴 등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문제는 낙서를 지우려고 해도 복구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범인이 지우지 않는다면 낙서가 남은 시설물의 소유 주체가 직접 복구를 해야 하는 탓이다. 이 때문에 범인이 처벌을 받았지만 그가 남긴 낙서는 여전히 지워지지 못한 경우도 있다. 지난 2023년 용산구 일대 상가 외벽에 미국인 남성 B(31)씨가 남긴 ‘이갈이’ 문구는 아직까지 후암동 근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경찰 체포 당시 “낙서를 직접 지우겠다”고 밝혔던 B씨는 지난 5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범죄 심리 전문가는 이 같은 낙서가 심리적 영역 표시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개인적인 감정은 개인 공간이나 지인끼리 풀 수도 있지만 범행 장소를 공중이 볼 수 있는 곳으로 택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낙서를 예술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범죄를 잘못 판단하는 것”이라고 봤다.

이 교수는 명백한 재물손괴인 범행을 막기 위해서 엄격한 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복구도 쉽지 않은 만큼 공공비용으로 낙서를 복구하고 거기에 쓰인 비용은 구상권을 청구하는 등 엄격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집행한 후 결과를 공지해 잠재적인 범죄 행위를 억제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