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트 이병의 희생과 위트컴 장군의 헌신[이희용의 세계시민]

사회

이데일리,

2025년 7월 14일, 오전 05:01

[이희용 언론인·이데일리 다문화동포 자문위원] 부산시 남구 대연동의 재한유엔기념공원에는 유엔군 13개국과 한국군 장병 2333위가 잠들어 있다. 주묘역과 녹지지역 사이에는 폭 70㎝, 길이 110m의 물길이 있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상징하는 ‘돈트(Daunt) 수로(水路)’다.

지난해 11월11일 제18회 유엔 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기념식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6·25 전쟁 때 희생된 유엔군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물길 옆에는 “수로 이름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전사자 중 최연소자(17세, 1951년 11월 6일 전사)인 호주 병사의 성을 따서 지은 것입니다”라는 설명이 한글과 영문으로 새겨져 있다.

주인공 제임스 패트릭 돈트는 1934년 7월 2일 호주 시드니에서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나 브리즈번에서 성장했다. 15세 때 집을 나와 일하다가 이듬해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나이를 21세로 속여 군에 입대했다. 호주 제3왕립연대 3대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한국 땅을 밟은 지 17일 만에 경기도 연천 전투에서 전사했다.

가장 계급이 높은 안장 용사는 유일한 장성급인 제임스 위트컴 미군 예비역 준장이다. 한국전 막바지에 부산의 제2군수사령관으로 부임했다가 한국을 위해 평생 헌신했다. 1982년 7월 12일 눈을 감았고 유언에 따라 한국의 흙이 됐다.

1953년 11월 27일 부산 영주동 피란민 판자촌에 큰불이 나 3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위트컴 장군은 상급부대 승인도 받지 않은 채 군수창고를 열어 천막을 짓고 음식과 의복을 나눠줬다가 본국에 소환됐다. 연방의회 청문회장에서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다”라고 말하자 의원들은 더 많은 군수품 지원을 약속했다.

이밖에 메리놀병원 설립, 부산대 부지 확보, 피란민 후생주택 건축, 노약자 요양시설 마련, 전쟁고아 후원, 북한의 미군 유해 발굴·송환 등에 힘쓴 공로로 202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다. 부산시민은 성금을 모아 이듬해 유엔기념공원 옆 평화공원에 위트컴 장군이 아이들과 손잡고 걸어가는 동상을 세웠다.

유엔기념공원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엔군 묘지다. 유엔군사령부는 1951년 1월 공사를 시작해 석 달 만에 완공한 뒤 개성·인천·대전·대구·밀양·마산 등지에 가매장한 유엔군 전몰장병의 유해를 안장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국회는 1955년 토지를 유엔군에 영구 기증했으며 현재 11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가 관리·운영을 맡고 있다.

한국전에 파병된 유엔군은 모두 198만8400명에 이른다. 미국이 178만9000명으로 90%에 이르고 다음은 영국(8만1084명), 캐나다(2만6791명), 튀르키예(2만1212명), 호주(1만7164명) 순이다. 이 가운데 미국(3만6492명), 영국(1177명), 튀르키예(1005명), 캐나다(516명), 호주(346명) 등 4만896명이 전사했다.

유엔기념공원에 묻혀 있는 장병은 영국 892위, 튀르키예 462위, 캐나다 382위, 호주 281위, 네덜란드 124위, 프랑스 47위, 미국 40위, 뉴질랜드 32위, 남아공 11위, 콜롬비아 4위, 벨기에·노르웨이·태국 각 1위 등이다.

7월 27일은 유엔군 참전의 날이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해 정전 60주년을 맞은 2013년부터 기리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참전 유공자와 참전국 외교사절 등을 초청해 기념식을 개최하며 참전국 재외공관과 지방 보훈관서에서도 기념행사를 마련한다.

돈트 이병과 위트컴 준장을 비롯한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무엇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던지고 꽃다운 청춘을 바쳤을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전략에 이용된 것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참전용사들은 자신들이 지켜낸 나라가 세계 일류 국가로 도약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는 느닷없는 계엄령으로 어렵게 쌓은 민주주의 전통과 경제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위기를 겪었다. 북한에 무인기를 보내거나 북한 오물 풍선의 원점 타격을 지시함으로써 국지전을 유도하려는 정황도 포착돼 전쟁의 공포가 되살아나기도 했다.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헛되지 않으려면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민주주의를 꽃피워야 한다.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나라가 돼야 이들의 보람도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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