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美대형은행 자본규제 완화 추진…국채 안정화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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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5년 6월 26일, 오후 07:01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5일(현지시간) 월가 대형은행들의 핵심 자본요건을 완화하는 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미국의 대형 은행들이 미 국채를 더 많이 보유하고 29조달러 규모의 국채 시장에서 중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다만 일부 연준 위원들은 이번 조치가 금융안정에 해가 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사진=AFP)
연준은 이날 ‘강화된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eSLR)’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공개 의견 수렴에 착수했다.

연준이 제안한 초안에 따르면, 대형 은행 지주회사의 최고등급 자본 요건은 현행보다 약 1.4%포인트(약 130억달러) 줄어들며, 자회사 기준으로는 약 2100억 달러 수준이 완화된다. 현행 eSLR 기준은 지주사에 5%, 자회사에 6% 수준이지만, 개정안은 이를 각각 3.5~4.5%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다.

연준이 eSLR 개정에 나선 것은 최근 은행들이 보유한 준비금이 급증하고, 국채 시장의 유동성 문제가 부각되면서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다. 현행 규정은 국채와 고위험 자산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어, 은행들이 비교적 안전한 자산인 국채를 보유하는 데도 자본 부담이 따른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eSLR비율이 낮아지면 대형은행들은 같은 양의 국채를 보유해도 더 적은 자본을 갖춰도 된다. 앞서 대형은행들은 미 국채 등 특정 자산을 레버리지 비율 산정에서 제외해달라고 연준에 요구해 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10여 년간 은행 대차대조표 상의 안전하고 저위험 자산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결과, 레버리지 규제가 지나치게 구속적으로 작용하게 됐다”며 “이제는 기존 접근 방식을 재검토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미셸 보먼 연준 부의장과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지지 입장을 밝혔다. 보먼 부의장은 “이번 조치는 미 국채 시장의 복원력을 높이고, 미래의 시장 불안 상황에서 연준의 개입 필요성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금융안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규제의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조정하려는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만약 대형은행들이 이번 매입으로 국채매입에 적극 나선다면 국채금리는 하향 안정화될 수도 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장기 금리 하락을 원하고 있으며, 특히 10년물 국채 금리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혀 왔다.

반면 아드리아나 쿠글러 이사와 마이클 바 이사(전 감독 부의장)은 반대 의견을 내놨다. 바 전 부의장은 그는 이번 개정안이 eSLR 규정을 약화시키고, 미국의 대형 은행들이 보유해야 하는 자본을 2100억달러가량 줄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별도 성명에서 “이러한 변화는 대형 은행의 파산 위험을 크게 높이고, 질서 있는 정리 절차를 어렵게 만들며, 예금보험기금(DIF)에 더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은행 규제 강화론자인 바 이사는 지난해 말까지 연준 부의장을 맡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 부의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일각에서는 이번 규정 완화가 실제로 은행의 국채 보유 확대에 기여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준 출신이자 바이든 행정부에서 재무부 고위직을 지낸 그레이엄 스틸(Graham Steele)은 블룸버그통신에 “규제 당국이 국채 시장 지원을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금융 안정성을 해치거나 초과 자본을 주주에게 배당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보다 정밀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eSLR은 글로벌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G-SIBs)들이 보유해야 할 자본의 양과 질을 규정한 것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대표적인 안전장치 중 하나다. 대형 은행이 보유한 총 자산(위험 수준 무관)에 비해 얼마나 충분한 우량 자본(Tier 1)을 갖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G-SIBs는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체이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웰스파고, 시티그룹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