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주의자 ‘맘다니’, 뉴욕시장 눈앞…트럼프·월가 충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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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5년 6월 26일, 오후 06:53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미국 최대 도시 뉴욕에서 ‘세대교체’와 ‘진보정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민주당 뉴욕시장 예비선거에서 무슬림 청년 정치인이자 민주사회주의자인 조란 맘다니(33) 뉴욕주 하원의원이 중도 성향의 유력 주자였던 앤드루 쿠오모(67) 전 뉴욕주지사를 꺾고 사실상 승리를 거머쥐었다. 뉴욕시가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미국 대도시에 처음 도입하는 실험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뉴욕시 퀸스 자치구 롱아일랜드시티에서 열린 선거 밤 행사에서 뉴욕시장 후보이자 뉴욕주 하원의원인 조란 맘다니(민주당, NY)가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맘다니는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의 후임을 뽑는 민주당 시장 예비선거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실상 민주당 후보로 지명됐다. (사진=AFP)
◇“렌트 동결·버스 무료”…뉴요커의 ‘생활고’ 파고들다

뉴욕시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맘다니 의원은 1차 투표에서 43.5%의 득표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쿠오모 전 주지사는 36.4%로 뒤를 쫓고 있다. 최종 승리 기준인 50%를 넘지 못했지만, 순위 선호 투표제 특성상 3위인 브래드 랜더 시 감사원장이 맘다니 의원과 상호 지지를 선언하면서 다음 주 집계될 최종 결과에서도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이번 경선은 트럼프 대통령 2기 임기 중에 치러진 선거로, 민주당이 향후 어떤 노선을 선택할지 보여주는 조기 시금석으로 주목받았다. 쿠오모 전 주지사는 민주당 주류의 지지를 받은 중도 성향의 정치인이었으며, 맘다니 의원은 과거를 청산하고 공공복지를 끌어올리겠다는 메시지로 진보 세력을 결집시켰다.

맘다니 의원은 시장경제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공공서비스를 강화하자는 ‘민주사회주의’ 이념을 지향하는 정치인이다. 이는 의료·주거·교육 등을 공공의 영역으로 강화하되, 다원적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미국 내 진보 정치 흐름의 한 갈래다. 그는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의 뒤를 잇는 대표적 진보 인물이다.

맘다니 의원은 높은 임대료와 의료비, 식료품 가격에 신음하는 뉴요커의 일상에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임대료 동결, 무료 버스 운행, 식료품 보조 같은 생활 밀착형 공약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강한 공감을 얻었다. 특히 평균 방 1칸 월세가 4500달러를 넘는 맨해튼에서는 ‘임대료 동결’ 공약이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이 밖에도 맘다니 의원은 최저임금 2배 인상, 중소기업 전담 관청 신설 등을 내세우며 “시장경제와 공공복지의 공존”을 내건 민주사회주의 노선을 분명히 했다.

맘다니 의원은 선거 캠페인에서도 참신한 전략을 구사했다. ‘생활비 절감’을 전면에 내세운 바이럴 영상, 유쾌한 콘텐츠, 활발한 소셜미디어 소통으로 젊은 유권자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익숙하지 않았던 이름이 뉴욕 정치 중심부에 자리 잡게 된 배경엔 이러한 소통 전략이 크게 작용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오른쪽)과 뉴욕주 민주당 소속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이 지난 4월12일 로스앤젤레스의 글로리아 몰리나 그랜드 파크에서 열린 ‘과두정에 맞서 싸우며: 우리가 나아갈 길’ 집회에 함께 도착하며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AFP)
◇월가 “핫 커미 서머” 경고…트럼프 “공산주의 광인” 맹비난

‘맘다니 돌풍’에 월가와 공화당은 격렬한 반응을 쏟아냈다. 월가에선 “이제 뉴욕은 사회주의자가 지배하는 ‘핫 커미 서머(Hot Commie Summer)’가 시작됐다”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왔다. 기업과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100억달러(약 13조6000억원) 증세에 일부 자산가들은 “플로리다 이주를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고까지 말한다. 대표적 헤지펀드 매니저인 다니엘 뢰브는 ‘플로리다 부동산 중개인이 웃고 있다’는 풍자 짤(meme)을 올리며 경선 결과를 비꼬았고, 헤지펀드 투자자 빌 애크먼 퍼싱 스퀘어 회장도 “맘다니가 시장이 되면 뉴욕에서 기업 대탈출을 보게 될 것”이라고 냉소를 표했다.

임대료 동결 공약에 이날 뉴욕증시에서 플래그스타 파이낸셜, 엠파이어 스테이트 리얼티 트러스트, SL 그린 리얼티, 보르나도 리얼티 트러스트 등 뉴욕시 부동산 관련 기업들 주가가 줄줄이 하락했다. 일각에서는 뉴욕의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에 사는 수백만명의 임대료를 동결하면 주택에 대한 새로운 투자를 저해해 공급이 줄고, 되려 임대료가 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그의 급부상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민주당이 선을 넘었다”며 “맘다니, 100% 공산주의 광인이 경선을 이겼다”고 비난했다. 공화당 의회 선거 캠페인 조직은 그를 “반유대주의적 급진 사회주의자”라고 지칭하며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약세 지역 후보들과 연계해 공세를 펼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지지세가 압도적인 뉴욕시의 특성상, 맘다니 의원은 오는 11월 본선에서도 유력한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직 시장인 에릭 애덤스는 각종 부패 의혹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미묘한 관계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한 상황이다. 그는 이번 선거에 무소속으로 재출마할 예정이다. 공화당 후보로는 2021년에도 출마했던 시민 치안 단체 ‘가디언 엔젤스’ 창립자 출신 라디오 진행자인 커티스 슬리와가 나섰다.

우간다 출신 인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맘다니 의원은 뉴욕주 퀸스 지역구에서 주 하원의원으로 활동해왔으며, 팔레스타인 지지 활동으로도 주목받아 왔다. 당선될 경우 그는 뉴욕시 역사상 첫 무슬림 시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