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폭로에 뿔난 마가…엡스타인 스캔들로 트럼프 방어전 본격화

해외

이데일리,

2025년 7월 20일, 오후 07:03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2019년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체포돼 수감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제프리 엡스타인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다시 제기되면서 미국 전역이 음모론 논쟁에 휩싸였다.

음모론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의 성 접대를 받았거나 적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에 대한 것으로, 이 이슈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로 확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보도한 WSJ를 상대로 ‘가짜뉴스’라면서 100억달러(14조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프리 엡스타인의 이미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엡스타인 파일 전면 공개할 것인가?”라는 문구가 미국 상무부 본부 건물 외벽에 투사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트럼프 공격하던 마가진영 ‘두둔’으로 돌아서

WSJ은 지난 1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03년 엡스타인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면서 ‘외설적인 그림을 그린 편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해당 편지는 엡스타인의 전 여자친구이자 미성년자 성매매를 도운 혐의를 받는 ‘기슬레인 맥스웰’이 만든 가죽 제본 앨범에 포함돼 있다고 WSJ는 전했다.

기사에는 직접 이미지가 실리지는 않았지만, WSJ은 “굵은 마커로 그린 여성의 나체 프레임 안에 손 글씨로 내용을 쓴 형태”라며 “여성의 가슴 부위가 곡선으로 표시돼 있고 ‘도널드’ 서명이 중요 부위 윗부분에 쓰여 체모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서한은 “생일 축하한다. 그리고 모든 날이 또 다른 훌륭한 비밀이 되기를”이라는 문구로 마무리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WSJ 기사 내용을 강하게 부인했으며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2명과 다우존스, 모기업 격인 뉴스코퍼레이션과 그 창립자 루퍼트 머독 등을 상대로 연방 명예 훼손법에 따라 100억달러(14조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팸 본디 법무장관에게 엡스타인 사건과 관련된 “모든 관련 대배심 증언 공개를 요청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다만 요청된 증언록은 연방수사국(FBI)이 수년간 확보한 방대한 수사자료 중 일부에 해당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매체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과 15년간 친분이 두터웠다. 하지만 2004년께 플로리다 팜비치의 호화 저택 매입을 놓고 경쟁하면서 관계가 급속히 냉각됐다. 또 당시 트럼프 대통령 지인의 딸에게 엡스타인이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을 계기로 마러라고 출입을 금지시켰다. 이후 엡스타인이 2019년 기소될 때까지 두 사람이 함께했다는 공식적 내용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 사건과 관련해 입을 연 것은 2015년 대선을 준비할 당시다. 그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착취와 유명 인사들에 대한 성상납 행위가 일어난 앱스타인의 섬에 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엡스타인이 체포 후 한 달 뒤 맨하튼의 구치소에서 숨진 채 발견되고 자살로 판명된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죽음에 클린턴 전 대통령이 관련됐다는 음모론성 게시글을 공유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 사건에 민주당 고위관련자들이 관련돼 있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할 것’이라는 공약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기도 했다. 당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백악관에 보수 성향 인플루언서를 초대해 ‘엡스타인 파일 1단계’라는 서류철을 나눠줬지만, 새로운 정보는 없는 빈 껍데기라고 비판을 받았다.

팸 본디 법무장관과 캐시 파텔 FBI 국장은 엡스타인 사건에 대한 수사와 공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돌연 입장을 바꿔 “엡스타인 파일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고, 그의 사망 원인은 자살이 맞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본디 장관을 두둔했다.

◇트럼프 엡스타인 음모론 적극활용

WSJ의 보도와 트럼프 대통령의 반발 등으로 엡스타인 스캔들은 미국 내 최대 논쟁거리로 부상했다. 동시에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WSJ 기사 자체가 트럼프 대통령을 저격하기 위한 음모라는 것이다. 보수 논평가이자 진행자인 메건 켈리는 WSJ 기사를 향해 “내가 본 것 중 가장 어이없는 음해성 기사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가 틀어진 후, 엡스타인 파일 공개를 주장해왔던 일론 머스크도 켈리의 엑스(X, 옛 트위터)에 이에 동의하며 “그 편지는 가짜같아”라고 답했다. 다만 정작 머스크 본인도 엑스에 엡스타인 파일에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삭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지지자인 로라 루머는 베넌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루퍼트 머독은 사악한 거짓말쟁이. 자신의 수십억 달러 규모 언론 플랫폼을 이용해 트럼프의 인격을 암살하려 했다. 2024년 대선에 트럼프 대통령을 제거하는 데 실패하자, 그 수단을 바꿨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주류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뉴욕타임스(NYT)는 19일 엡스타인과 트럼프 대통령의 15년간 친분을 자세히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엡스타인 사건의 피해자 여성들 가운데서는 엡스타인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 애는 당신용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거나, 엡스타인과 함께 트럼프타워로 가서 성추행당했다고 증언한 이도 있다. 1992년 트럼프 대통령이 ‘캘린더 걸’(비공식 미인대회) 경영대회를 마러라고에서 열었을 때 초대받은 유일한 인물이 엡스타인일 정도로 두 사람은 친근한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딥스테이트(비선실세) 음모론도 제기된다. 엡스타인 수사 자료 공개를 촉구해왔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18일 자신의 팟캐스트인 ‘워룸’에서 WSJ의 보도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할 때 가장 강하다. 지금은 딥스테이트와 미국 지배계층이 트럼프를 파괴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주류 언론인 WSJ의 보도를 또 다른 딥스테이트의 음모로 치부하는 모습이다.

‘기성 언론’ 대 ‘마가’라는 새로운 대척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더힐과 악시오스는 WSJ의 보도 이후 엡스타인과 관련된 트럼프 지지세력의 내홍이 일단락되는 분위기라고 19일 전했다. 다만 마가 측이 여전히 엡스타인 성범죄 네트워크와 고객리스트, 2019년 사망에 대한 진실 등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갈등은 언제나 재점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의 마가 관계자는 악시오스에 “트럼프 대통령이 명령한 대배심 증언 공개는 몇 달 전부터 했어야 할 일”이라며 “그들이 정보를 갖고 있었음에도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다는 것만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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