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미국도 자국 소비자들의 후생이 깎이는 부담(가격 상승)을 안고 관세 협상에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미 양국 간의 호혜적인 접점을 찾을 부분이 분명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들어서며 우원식 국회의장과 세종대왕 동상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우선 통상정책을 통해 무역적자를 줄인다는 데 1차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외국 기업들의 미국내 직접 투자와 생산을 유도해 고용을 늘리고 성장을 도모한다는 계획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효율성’에 근거해 구축됐던 국제 무역 네트워크를 어느 정도 뒤흔들겠다는 복안인 것이죠. 제1 타깃이 중국이라면 그다음은 한국과 일본 등 수출 선도국가가 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관세도 엄연한 세금의 일종이라는 점입니다. 미국인이라면 한국산 제품을 관세만큼 더 비싸게 주고 사야 합니다. 이른바 ‘소비자 후생의 감소’를 야기합니다.
세금의 역효과는 경제학 교과서에도 이미 잘 나와 있습니다. 당장은 정부의 수입 증가로 이어질 수 있지만, 소비 감소에 따른 생산 감소로 이어진다는 가정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미국내 주류 경제학자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에 대해 반대를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기업과 소비자들에 대해서는 감세를 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관련법도 이미 통과한 상태입니다. 감세에 따른 세수 부족액을 관세로 채우겠다는 계획도 있는듯 합니다.)
만약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주요 수출국가에 관세가 붙었고 미국으로 수입되는 공산품에 가격이 전체적으로 오른다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정책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잡겠다고 빅스텝(0.5%p 금리인상)을 단행하며 난리를 쳤던 게 불과 2~3년 전입니다. 연방기준금리를 내리기는 커녕 올려야할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정부도, 우리 정부도 미국의 진퇴양난 상황을 잘 알 것이라고 봅니다.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은 ‘전략적 강수’일 수 있습니다. ‘관세’라는 카드로 크게 한번 흔들어 놓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하는 것이죠. 강자가 취할 수 있는 전형적인 협상 방법입니다.
참고로 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회원국의 평균 관세율은 40%에 달했다고 합니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다들 관세장벽을 높이던 때였습니다. 이후 수십년에 걸쳐 미국 주도로 관세 장벽은 낮아졌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이 그 예입니다.
당연하게도 이런 자유무역체제에서 가장 큰 이점을 누린 이들은 미국 소비자들입니다. 이들의 왕성한 소비를 뒷받침해준 나라가 2001년 WTO에 가입한 중국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물가 상황에서 ‘지속적 성장’을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유무역의 가장 큰 혜택을 미국인들이 본 것이죠.
◇韓 기업들, 이미 美에 많은 것 줬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앞둔 우리 정부의 고민은 미국 측에 ‘딱히 줄게 없다’입니다. 방위비 증액, 농산물 시장 개방 등을 새로운 카드로 내밀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오케이’할지 미지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꽤 적지 않은 규모로 양보하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역설적으로 대미 무역 흑자가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공정 무역의 근거’라면서 우리를 압박하는 주요 근거가 되는데 말이죠.
지난 4월 산업연구원이 발간한 산업정책 리포트 ‘한국 대미 수출의 구조적 분석’ 자료를 보면 최근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미국 제조업과의 연계성에 기반한 필연적 결과였습니다. 무슨 말이냐, 미국내 제조업을 우리나라 기업이 키워주면서 생긴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출처 : i-KIET 산업경제이슈 제181호, 한국 대미 수출의 구조적 분석
즉,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한국산 산업재 조달 → 중간재 및 자본재 수출 증가 → 연계성 강화’ 흐름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공장이 다 완성되고 미국내 원자재 수급이 늘면 지금의 대미 흑자폭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현대차는 2025년 3월 총 21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합작해 미시간 배터리 공장을 20억달러에 인수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미국에게 좋은 대미 흑자인데,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이니 아이러니합니다.
그래도 한국은 수 천년 강대국 틈바구니 사이에서 외교로 난국을 넘긴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도 그리 호락호락한 나라는 분명 아닙니다. 미국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도, 우리가 지나치게 불리한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국도 자신들의 요구가 100% 수용될 것으로 여기진 않을 것 같습니다. 자국 소비자들의 후생에 악영향이 갈 수 있으니까요.
적당한 접점을 찾는 게 필요해보이는데 크게 보면 어렵지는 않아 보입니다. 지금 당장 뚜렷한 답을 낼 수 없는 상황이겠지만 상호 호혜적인 측면에서 합의를 이뤄나갈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