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관세전쟁 피난처 될 CPTPP

정치

이데일리,

2025년 7월 21일, 오전 05:00

[황인상 국립외교원 국제통상경제안보연구부장] 최근 글로벌 통상 환경은 그야말로 안갯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맞서 유럽연합(EU)과 캐나다, 아시아 국가들은 무역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격랑 속에서 한국은 미국이 탈퇴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황인상 국립외교원 국제통상경제안보연구부장
CPTPP는 2018년 12월 정식 발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현재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칠레, 페루,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 11개국에 더해 지난해 12월 영국이 가입해 총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이 협정은 단순한 관세 철폐를 넘어 디지털 무역, 국영기업, 노동 및 환경 기준, 투자 등 21세기형 무역 이슈를 포괄하며 높은 수준의 개방과 규범을 지향한다. 규칙 기반의 자유무역 질서를 수호하는 중요한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한다.

미국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 정책으로 대표되는 자국 우선주의 통상 정책은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오랜 우방국들조차 더 큰 관세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캐나다에 35%, 일본에 25%, EU에 30% 등 관세 부과를 예고하며 협상타결을 요구하고 있다.

캐나다는 지난 3월 마크 카니 총리 취임 후 미국과의 관세 갈등에 대응해 조용하지만 실용적인 무역 다변화는 물론 ‘하나의 캐나다 경제’(One Canadian Economy) 전략을 통해 미국 의존적인 산업 구조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캐나다산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은 첫 운반선이 한국으로 향하며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의 구체적인 성과를 보였다.

일본 역시 경제 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동맹국들과의 공급망 협력, 특히 반도체 및 주요 광물 분야에서의 협력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지난 5월 말 열린 한일경제인회의에서 양국 경제인들은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비롯한 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한국의 CPTPP 가입을 위해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일본 정부 측도 한일 관계가 경색되었던 과거와 달리 한국의 가입에 호의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EU 역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전략을 통해 특정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 안정성 확보와 자국의 첨단 기술 보호·육성에 중점을 둔다. 뉴질랜드, 칠레, 케냐, 인도네시아, 인도 등과 새로운 무역 협정 추진 또는 기존 협정 현대화를 통해 교역선을 다변화하고 핵심 광물 확보를 위한 국제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등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26일 CPTPP와 EU 사이의 구조적 협력(structured cooperation)을 희망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무역기구(WTO)를 재설계하기 위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중 경쟁 구도와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서 각국이 자국의 경제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보여준다. 한국은 한미동맹이 최우선의 외교적 가치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러한 국제적 흐름 속에서 대안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의 무역 구조는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한 상황이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은 여전히 중국(19.5%)과 미국(18.7%)으로 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매우 높다. 이러한 무역 집중도가 한국 경제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으며 교역국 다변화가 강력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이 CPTPP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무역 다변화 및 특정국 의존도 완화를 위해서다. 특정 국가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취약성을 드러낸다. CPTPP 가입은 일본, 캐나다, 호주, 영국 등과의 기존 교역 관계를 심화함으로써 미국과 중국에 의존해왔던 무역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경제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대응차원에서도 필요하다. 한국이 CPTPP에 가입하면 역내 생산 네트워크에 깊이 통합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고 글로벌 가치사슬(GVC)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CPTPP는 높은 수준의 무역 규범을 제시하며 이는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통상 환경을 지향하는 국가들의 연대를 상징한다. 한국이 CPTPP에 참여함으로써 이러한 규범 선도국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세계무역기구(WTO) 다자규범체제가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에서 미래 통상 질서 재구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물론 CPTPP 가입 과정에서 농축수산업 등 일부 민감 산업의 피해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면밀한 피해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관련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능동적으로 통상 환경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급변하는 글로벌 통상 환경 속에서 우방국들과의 다자 협력 채널을 확장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의존성을 탈피하고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필수적인 방안이다. 미국과의 관세협상과 별도로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CPTPP 가입을 위한 로드맵을 구체화하고 능동적으로 새로운 파고에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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