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HN 홍동희 선임기자)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글로벌적인 성공은 화려한 비주얼과 흥미로운 스토리, 그리고 귀를 사로잡는 OST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결과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루미의 목소리를 연기하고 주요 삽입곡들을 작곡한 한국계 미국인 작곡가 이재(본명 김은재·EJAE)는 K팝 팬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음악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과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데뷔를 꿈꿨지만, 결국 고배를 마셔야 했던 그녀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하며 차세대 글로벌 뮤지션으로 발돋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어릴 적 '한국의 비욘세'를 꿈꿨던 이재(김은재)는 2003년부터 10년 넘게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습생으로 땀방울을 흘렸다. 소녀시대 멤버들과 함께 연습생 시절을 보내며 데뷔를 준비했지만, 수차례 데뷔가 무산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뉴욕대학교에서 음악산업과 심리학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 후 다시 SM엔터테인먼트의 문을 두드렸지만, 서로 추구하는 음악 색깔의 차이와 적지 않은 나이로 인해 결국 데뷔의 꿈을 접어야 했다. 깊은 좌절감을 느꼈지만, 그녀는 스스로 음악을 만들며 작곡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K팝 작곡가로서 그녀의 재능은 곧 빛을 발했다. 남자친구와의 다툼을 소재로 만든 곡 'Psycho'가 2019년 레드벨벳의 타이틀곡으로 채택되면서 K팝 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당시까지 작곡 경험이 많지 않았던 그녀는 이 곡의 성공을 발판 삼아 에스파의 'Armageddon' 등 여러 K팝 히트곡의 '탑라이너'(보컬 멜로디와 가사를 쓰는 사람)로 활약하며 실력 있는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SM에서 만난 인연인 가수 겸 작곡가 앤드류 최의 도움으로 공동 창작의 기회를 얻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이재의 추천으로 앤드류 최가 남자 주인공 '진우'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는 것이다.
이재는 2020년 말 동료의 소개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작곡팀에 합류했다. 주인공 루미의 보컬로 낙점된 것은 2023년 무렵이었다. 시범 삼아 부른 그녀의 목소리가 매기 강 감독의 귀를 사로잡았고, 결국 그녀는 루미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코러스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특히 극 초반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헌터스 만트라'는 그녀가 직접 판소리와 한국어 가사를 연구하며 만들고 부른 곡으로, 한국적인 매력을 더하는 데 기여했다.

영화 음악 작업에 대해 김은재는 "K팝스러우면서도 화려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평소 K팝 작곡 시 풍성한 화성을 배경에 활용하는 스타일이 영화 음악과 잘 어울렸다고 설명했다. 또한, 뮤지컬 경험이 풍부한 작가들과 협업하며 스토리 전개에 맞는 음악적 흐름을 만들고, 자신은 귀에 감기는 팝적인 요소에 집중하여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더블랙레이블과 협업하여 탄생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중에서도 꽃미남 저승사자 그룹 '사자보이즈'가 부른 'Your Idol'은 팬들을 매혹하는 가사로 현실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이재는 이 곡의 가사를 쓸 때 연습생 시절 SM 사옥 앞에서 팬들이 여자 연습생에게 쓰레기를 던지던 충격적인 모습 등 아이돌 문화의 어두운 단면을 떠올렸다고 한다. 또한 기독교의 '우상숭배' 금기에서 영감을 얻어 엑소의 '마마'나 아버지가 즐겨 듣던 성가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을 가사에 녹여냈다.
주제가인 'Golden'은 이재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연습생 시절 자신의 콤플렉스를 숨기고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작곡가로서 유명 작곡가 뒤에 가려져 느꼈던 상처 등 그녀의 개인적인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시범 녹음 중 울면서 이 곡을 불렀던 기억을 떠올리며 루미를 통해 자신 또한 치유받았다고 고백했다. "더 이상 숨지 않고 빛나겠다"라는 'Golden'의 가사처럼, 그녀는 이 노래가 듣는 이들에게도 희망을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더 이상 유명한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없지만, 이재는 언젠가 그래미 작곡상을 받아 아시아인도 미국 음악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다. 데뷔의 문턱에서 수많은 좌절을 겪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갈고닦아 마침내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글로벌 히트작을 통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좌절을 딛고 일어선 그녀의 아름다운 날갯짓이 앞으로 K팝을 넘어 세계 음악 시장에 어떤 감동을 선사할지 기대가 모아진다.
사진=MHN DB, 이재 SNS,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