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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이 변호사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기존 드라마들과 다른 결의 이야기로 주목받고 있다. 변호사로서의 정의감과 사명감보다 직장인으로서의 현실적인 생존기이자 보통의 월급쟁이의 일상으로 시청자들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난 5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tvN 토일드라마 '서초동'(극본 이승현/연출 박승우)은 서초동 법조타운을 배경으로 안주형(이종석 분)부터 강희지(문가영 분) 조창원(강유석 분) 배문정(류혜영 분) 하상기(임성재 분)까지 '어쏘 변호사'(법무법인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는 변호사) 5인방의 희로애락 성장기를 다루는 드라마다. 형민빌딩의 각기 다른 법무법인에 출근하던 5명의 변호사들이 '건물주' 김형민(염혜란 분)의 합병 제안에 따라 '법무법인 형민'의 직장 동료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서초동' 역시도 각 변호사가 맡은 사건이 매회 달라지지만, 주로 이들의 일상과 현실적인 고민, 따뜻한 동료애로 서사를 채우고 있다. 그간 변호사가 주인공이었던 드라마가 사건 중심의 스릴러나 법정 싸움, 영웅적인 정의 구현을 다뤘다면, '서초동'은 변호사들의 삶과 애환, 고뇌에 보다 집중한다. 이들이 한데 모여 점심 식사를 하고, 퇴근 후 술잔을 기울이는 신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월급과 인센티브라는 '금융 치료'에 좀 더 추진력을 얻고, 식사 시간에 '밥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으로 힐링을 만끽하는 모습은 현실 속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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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은 각기 다른 캐릭터로 점차 서사를 섬세하게 쌓아가고 있다. 사건과 의뢰인을 일로써 대하는 주인공 안주형은 직업군의 일상과 현실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가장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안주형은 9년 차의 일을 노련하게 처리하는 변호사로, 의뢰인의 감정에 마냥 이입하던 신입 시절과는 사뭇 다른, 판단력이 탁월하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유능하면서도 프로페셔널한 면모가 돋보인다. "시키면 해야 한다"는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마인드를 보여준다. 전 여자 친구 박수정(이유영 분)과 관련한 이혼 소송을 맡고 싶지 않았지만,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직장인의 현실도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회에서 선망하는 전문직이지만, 변호사로서 일로 마주하는 의뢰인들을 통해 '현타'(현실자각 타임)를 느끼는 고충도 디테일하게 그려졌다. 안주형은 전 여자 친구 박수정의 남편 차정호(남윤호 분)를 대리하는 이혼 소송을 맡으며 환멸을 느꼈다. 그는 자신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는 박수정에게 "안주형이 아니고 그냥 차정호 대리인"이라며 사적 감정을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또한 "변호사를 돈 주고 샀다"는 뉘앙스의 표현을 쓰는 차정호의 무례한 행동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으나, 의뢰인이 자신과 박수정의 과거 관계를 알고 의도적으로 사건을 맡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분노했다. 결국 차정호가 수고했다며 건넨 상품권을 찢으며 "안 찢어질 줄 알았는데 조금 넣으셨나보다, 잘 썼다"고 응수했다.
조창원은 대표 변호사 성유덕(이서환 분)으로부터 구치소에 수감 중인 재벌 회장 아들 접견을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범죄자인 회장 아들은 모욕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았고, 변호사들 사이 분위기 메이커로 늘 밝은 모습만 보여줬던 조창원의 얼굴엔 그늘이 엿보였다. 또한 하상기는 불륜을 저지른 아내가 음주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발생한 소송을 맡게 됐다가, 상대측으로부터 갖은 비난을 들어야 했다. 의뢰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일을 했을 뿐이지만, "당신 같은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겠나" "좋은 집에서 태어나서 비싼 돈 주고 로스쿨 다니고 쉽게 변호사 된 당신 같은 사람이 이런 일들이 와닿기나 하겠냐"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라는 모진 말을 고스란히 들었다.
'서초동'은 tvN에서 의사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뤄 인기를 끌었던 '슬기로운' 시리즈의 법조 버전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들 또한 먹고 살기 위해 변호사로 일하고 있지만, 동시에 사건과 의뢰인을 통해 직업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강희지는 공공임대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린 장현석(전석찬 분)이 이를 갚지 못하면서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은행을 의뢰인으로 둔 안주형을 비판하며 대립했다. 강희지는 장현석을 안타깝게 여겨 도와주기까지 했으나 자신의 행동이 반드시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도 배웠다. '서초동'은 주인공들의 선택이 꼭 옳지만은 않다는 점으로 변호사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는 동시에 성장 서사도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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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은 호평에 힘입어 가장 최근 회차인 4회가 5.6%(닐슨코리아 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달성했다. 각 변호사의 숨겨진 사연과 더불어 안주형 강희지의 로맨스가 급물살을 타면서 시청률도 탄력받을지 주목된다. 안주형과 강희지는 10년 전 홍콩 여행에서 만났던 인연이 있다. 두 사람이 키스까지 나눴던 사이라는 과거가 드러난 가운데, 당시 여행에서의 인연이 왜 지속되지 못했는지, 안주형이 다시 만난 강희지를 왜 모른 척했는지 등 서사가 풀리지 않아 더욱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두 사람은 식사 시간에도 사건을 대하는 감정의 온도가 달라 티격태격하기도 했고, 사건에 대한 서로의 다른 관점은 각자의 가치관에도 조금씩 고무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변호사로서의 각자의 신념이 계속해서 충돌했던 두 사람이지만 둘의 러브라인이 어떻게 변화될지도 흥미를 더한다. 변호사들의 '먹고사니즘'에 설레는 로맨스까지, 이들의 일과 사랑을 담아낸 '서초동'의 다음 이야기가 더욱 기대된다.
aluemcha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