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세현이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서클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2025.6.26/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저는 1000명, 2000명의 관객을 놀라게 하는 연주보다 한두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연주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감탄을 끌어내기 위한 연주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제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지난 3월 '롱 티보 국제콩쿠르'에서 우승과 함께 청중상·평론가상·파리특별상을 휩쓴 피아니스트 김세현(18)은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서클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연주에 대해 밝혔다.
김세현은 "자신을 드러내려고 한다면 놀라움을 주는 연주가 나오겠지만,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음악을 섬기는 마음으로 연주하면,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주에 가까워지지 않나 싶다"며 "하지만 그런 순간은 모든 조건이 기적처럼 맞아떨어져야만 가능한, 마법 같은 일이기에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센 강변에 반해 콩쿠르 도전장"
김세현은 롱티보 콩쿠르 우승에 대해 "결과를 전혀 기대하지 못했는데, 큰 상을 받게 됐다"며 "과분한 관심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 콩쿠르에 참가하게 된 데에는 '스승 당 타이 손의 격려'와 '센 강변의 야경'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 타이 손은 베트남 출신의 피아니스트로 제10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쇼팽 스페셜리스트'다.
"당 타이 손 선생님과 공부하며 프랑스 음악가에게 몰두하게 됐어요. 선생님께 여쭤보니 (콩쿠르 참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셨지요. 또 예전에 어스름이 깔린 센 강변을 걸은 적 있는데, 그때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어요. 파리의 매력에 이끌려 콩쿠르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콩쿠르 무대 후 프랑스의 명문 음악 전문지 '디아파종'은 "김세현은 범접할 수 없는 예술가"라고 평하는 등 세계 클래식계의 뜨거운 조명을 받았다. 그는 그러나 앞으로 "다른 콩쿠르에는 나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콩쿠르보다 연주 무대가 더 끌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콩쿠르의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했다. "콩쿠르는 연주 기회를 제공하고, 그 안에서 제가 발전하는 기회가 된다"며 "음악가로서 동기부여가 되는 면이 있다"고 했다.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세현이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서클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6.26/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김세현의 두 스승, 당 타이 손·백혜선
열 살 때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한 김세현은 예원학교 재학 중 도미(渡美), 뉴잉글랜드 음악원 예비학교, 월넛힐 예술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 현재 하버드 대학교(영문학) 학사, 뉴잉글랜드 음악원(NEC) 피아노 석사 과정을 동시에 밟고 있다. 현재 당 타이 손과 백혜선이 그의 스승이다.
두 스승에게 어떤 가르침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당 타이 손 선생님의 스타일은 굉장히 디테일한 반면 백혜선 선생님은 좀 더 큰 그림을 중심으로 가르쳐준다"면서 "백 선생님은 학생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유연하게 판단해 지도하시는 편이고, 당 타이 손 선생님도 물론 그렇지만, 특히 쇼팽에 대해선 워낙 확고한 음악적 아이디어를 갖고 계셔서 그 철학을 깊이 있게 전수해 주신다"고 답했다.
영문학 공부는 피아노 연주에 어떤 영향을 줄까. "글과 음악은 모두 예술가가 아이디어를 현실로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문학과 음악은 본질적으로 연결돼 있고, 영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피아노 연주에도 분명 작게나마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고 했다.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세현이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서클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6.26/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김광석·이문세 노래도 가끔 들어"
피아니스트 임윤찬(21)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무척 존경하는 선배"라며 "미국 보스턴에서 임윤찬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보다 더 잘 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라이벌 의식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전혀 없다"며 웃었다.
클래식 외에 케이(K)-팝 등 즐겨 듣는 다른 장르의 음악이 있을까. "거의 없어요, 가끔 우연히 듣게 되는 음악이라면 김광석, 이문세 선생님의 노래예요"라고 답하자, 기자회견장에 웃음이 퍼졌다.
10대 연주자로서 또래들이 누리는 삶을 경험하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물론 10대에만 할 수 있는 경험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이런 삶을 살아와서 무엇을 크게 잃었다고 느끼진 않아요. 음악이 그만큼 제 삶을 채워주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세현이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서클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2025.6.26/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js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