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역사 크루즈] '종이호랑이가 된 이란'

생활/문화

뉴스1,

2025년 7월 14일, 오전 07:00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전쟁은 믿음으로 시작한다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무려 8년을 끌었고, 호메이니 혁명 이후 이란 사회, 나아가 2010년대까지 중동 정세를 결정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전쟁이다. 당시 나는 새내기 대학생이었고, 지금처럼 해외 소식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던 시대도 아니어서 전쟁의 진행 상황을 거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중동의 정세라고 하면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 간의 갈등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동 국가들의 구성은 복잡하며 그것만 가지고는 중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1988년 이란 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2년 뒤인 1990년 걸프전쟁이 발발했다. 이때 나는 대학원생이었다. 진보적 역사 단체에 속해 있던 연구자들은 모두 흥분해서 당장 걸프전과 관련된 심포지엄에 공개 강연회까지 개최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 전쟁이 제2의 베트남전이 되고 미국이 다시 한번 공개 망신을 당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나는 반대로 미군이 일방적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주장했다. 걸프전과 베트남전이 다른 이유를 조목조목 들어서 설명했었다. 놀랍게도 친한 후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전쟁이 시작되자 미군이 압도적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쾌속 진군을 시작했지만, 이때도 진보주의자들은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 모두 한결같이 이건 사담 후세인의 유인 전술이라고 말했다. 그 믿음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사담 후세인은 위대한 전략가가 틀림없다"라고 말하며 "사담 후세인을 위하여"라고 건배까지 드는 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다.

누구를 응원하는가는 개인의 양심과 자유의 영역이다. 그러나 응원이 현실과 진실을 왜곡하는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간단한 진리가 너무나 쉽게 짓밟힌다. 심지어 허구한 날 조선시대 사관을 들먹이며 객관성, 진실, 양심이 역사학자의 자랑이자 상징인 듯 말하던 사람들이 너무나도 쉽게 진실을 헌신짝처럼 걷어차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었다.

사람은 진실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이건 역사학자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학자가 아니라도 역사를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라면 깨달을 수 있는 인간사의 상식이다. 그럼에도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역사학자의 역할은 양심과 진실의 마지막 영역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최후의 보루가 그날 사망신고서를 썼다.

다시 30년이 지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터졌다. 지금은 쑥 들어갔지만, 몇 달 전만 해도 "이스라엘은 1주일 이상 전쟁을 할 수 없다", "가자에 구축한 하마스의 지하터널은 이스라엘군에게 죽음의 공간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판을 쳤다. 이번에는 내 말을 믿어주는 분들도 꽤 생겼지만, 여전히 아닌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란으로 번지면 또 근거 없는 예측과 믿음이 부풀어 올랐다.

가자 전쟁이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으로 확산되자 이란은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드디어 이란이 개입한다. 이란이 개입하면 이스라엘은 전에 없던 봉변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속출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런 기대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란이 지상군을 파견한다면 직선거리로만 900km 이상을 이동해야 한다. 경유지인 이라크와 시리아, 레바논은 이란을 도와줄 형편이 못 된다. 이라크는 종교적, 역사적으로 이란과는 숙적이다. 이 라이벌 관계는 최초의 문명이라는 수메르 시대부터 시작돼 700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슬람교가 등장하고 한때 하나의 제국 아래 통합된 적도 있지만, 그때도 두 지역의 라이벌 관계는 대단했고 반란으로 서로 권력을 탈취하곤 했었다. 이슬람교도 두 나라를 화해시키는 데는 실패해서 서로 수니파와 시아파의 맹주국이 되었다.

게다가 이라크, 시리아는 내전의 후유증이 너무 커서 이란을 도와줄 여력도 없다. 그러므로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면 이라크 영내 통과가 가능하다고 해도 이동과 보급은 전적으로 자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은 1000km가 넘는 이동로가 이스라엘 공군에게 완전히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국의 공군력의 차이는 절대적이다. 이란의 주력기종 중 하나가 톰 크루즈의 탑건에도 패기된 전투기로 등장하는 미국의 F14 톰캣이다. 영화에서는 '톰 형'이 톰캣을 타고 5세대 전투기를 격파하지만, 현실에서는 탑건도 이스라엘에 있다.

이런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했나 보다. 이란에 대한 기대는 헤즈볼라가 파괴되고, 이란의 능력이 세상에 공개된 이후에야 끝났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진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고 해도 참 새로운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많이 씁쓸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애초에 전쟁이라는 자체가 믿음의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아무리 경제 분석이 정확하고 투자 전망이 밝다고 해도 믿음에 가까운 확신 없이 전 재산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쟁이란 전 재산을 던져 투자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는 큰 결단을 요구하는 행위이다. 믿음이 진실을 압도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믿음을 걷어내고 이란의 군사력이 왜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지를 살펴보자.

이란 군대는 왜 약해졌을까
이란은 태고 이후로 중동 세계의 강국이었다. 모든 나라의 역사처럼 이란의 역사도 부침이 있었지만, 어느 때이든 단위 전투력은 중동 최강인 국가였다. 우선 전략 물자인 금속이 풍부해서 무기와 군수에서 메소포타미아 국가들을 압도했다. 메소포타미아 국가들은 무기 재료를 이란에서 수입하는 형편이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인종적으로 이란인들의 체구와 힘도 중동 최강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제국을 점령하고 자신의 마케도니아 장창부대를 은퇴시켰을 때 대안으로 육성하려고 했던 새로운 장창부대가 이란인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축구는 특성상 서로 몸을 부딪쳐야 하는 스포츠이다. 선수들 말을 들어보면 체격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한국 축구 대표선수들이 제일 부담스러워하는 상대가 이란이었다.

이란은 험한 고원지대가 많아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도 강한 단련을 받았다. 이란인의 용맹성은 중국의 역대 왕조에도 잘 알려졌었다.

현대전에서 체격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듯하지만 군사적 역사와 전통,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의 표현에 따르면 한 국가에 내재한 상무적 기질은 현대전에서도 한 국가의 군사력을 평가할 때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요소이다. 이란의 정통 이슬람 교리에 기반한 혁명 체제는 상무적 기질을 육성하면 육성했지 약화시키는 체제가 아니다.

현대전에서는 경제력과 기술력도 중요하다. 이란은 세계적인 에너지 자원 보유국이다. 아라비아의 석유 부국들이 자원은 있지만 교육열, 기술인력 같은 인적자원과 이런 분야에 관한 국민적 열정이 지극히 부족한데 반해 핵무기, 미사일 제조에서 볼 수 있듯이 이란은 그렇지 않다. 이런 이유들이 외부 전문가들이 이란의 군사적 역량을 높이 평가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전력은 이스라엘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제는 종이호랑이었다는 표현을 거침없이 쓰는 사람도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일차적인 원인으로 미국의 제재를 꼽기도 한다. 대안으로 구입한 러시아 무기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상당한 평가절하를 당하고 있다. 이는 중요한 요인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실전 체제의 상대적 부족이다. 이스라엘은 1974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후로 큰 전쟁이 없었음에도 경제와 군사력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반면 이란은 혁명체제를 고수해야 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혁명 체제는 자유경쟁 사회가 주는 경쟁력과 역동성을 떨어트린다. 혁명과 종교적 열정이 대항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20세기 후반에 그런 믿음은 허구임이 증명되었다.

지난 수십 년간 시아파의 맹주이고, 저항의 축의 우두머리였지만 정작 이란의 국가적 능력은 내적 단속에 집중되었다. 미국의 제재가 아니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란이 핵개발에 매진한 이유도 내적 역동성의 부족, 실전적 군대라기보다는 체제 유지용으로 변화해 가는 군대의 약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모든 것을 합쳐도 당할 수 없는 결정적인 요인이 있다. 이스라엘이 너무 강했다. 미국의 지원도 지원이지만 군사와 정보 분야에서 이스라엘의 엄청난 노력 지속적인 성장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성장을 거듭했다. 1970년부터 지금까지 미국을 제외하고 이런 성장을 보인 군대가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이스라엘도 경제가 성장하고 평화가 지속되면서 정치는 격렬해지고, 젊은이들은 군에 싫증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실전 능력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마지막으로 이런 지적을 하고 싶다. 이스라엘의 군사력 지표는 외부에 맞춰져 있었다. 이란을 포함해서 모든 중동 국가는 내부에 비중이 더 높았다.

yhkmyy@hanmail.netnews1.kr

이시간 주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