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업계에 따르면 새 정부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 조짐을 보인 뒤 지난달부터 이날까지 코스피(유가증권시장) 상장사 3곳이 EB를 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EB 발행은 기업이 보유한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거나 재무상태가 열악한 기업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법이다. 그런데 보유 자사주를 소각해야 할 가능성이 생기자 대기업들이 이 자사주를 활용해 잇따라 EB 발행에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5일 SK엔무브 상장을 철회하는 동시에 재무적투자자(FI)가 보유하던 지분을 되사오는 과정에서 자사주를 활용해 EB를 발행했다. IMM크레딧앤솔루션(ICS)이 보유한 SK엔무브 지분 30%를 8593억원에 매입키로 한 가운데 3767억원 규모의 자사주 교환 대상 EB를 ICS 상대로 발행했다. 사실상 인수대금의 40% 이상을 자사주로 지불한 셈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자사주는 자금조달뿐 아니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호반그룹과 신경전을 벌이는 중인 ㈜LS는 지난달 17일 자사주 1.2%를 활용해 650억원 규모의 EB 발행을 공시했다. 이 EB를 매수하는 측은 호반과 경영권 분쟁 중인 대한항공으로, 양측이 호반에 맞서 공동 전선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가 보유하는 순간 의결권이 되살아나 우호세력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MBK파트너스·영풍과 경영권 분쟁을 진행 중인 고려아연도 자사주를 대거 활용해 우군을 확보한 바 있다.
그동안 기업들이 자사주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적지 않은 비판적 시각이 존재해왔다. 특히 상장사가 인적분할을 하면 자사주에 신주배정을 해 지배력을 높이는 방법이 비판을 받아왔다. 이른바 ‘자사주 마법’으로 불리는 기법인데, 이 때문에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해 이 같은 자사주 마법을 차단했다.

(이미지=챗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