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형마트로 가요"…롯데·이마트가 증명한 '공간혁신'의 힘(종합)

경제

이데일리,

2025년 6월 26일, 오후 07:04

[이데일리 한전진 김정유 기자] “이런 마트 풍경, 10년 만에 처음 봐요.”

26일 오전 경기도 구리시 롯데마트 그랑그로서리 구리점 개점 첫날. 개장 한 시간 전부터 매장 앞은 입장을 기다리는 소비자들로 인산인해였다. 줄지어 들어선 이들은 반값 수박, 토종닭 등 신선 식품 행사 코너로 몰렸다. 확 넓어진 식품 공간에 “장 볼맛 난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같은 날 개장한 고양시 킨텍스의 ‘스타필드 마켓’ 2호점. 기존 이마트(139480) 킨텍스점을 리뉴얼한 이곳은 장보기를 마친 이들이 널찍한 서가 ‘북 그라운드’에 앉아 쉬거나 올리브영·다이소 등 브랜드숍을 둘러보며 여유를 즐겼다.

26일 오전 경기도 구리시 롯데마트 그랑그로서리 구리점 개점 첫날. 할인 상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매장은 붐볐다. (사진=롯데마트)
전통 대형마트가 다시 ‘공간’으로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온라인 장보기와 초저가 이커머스가 일상인 지금 마트는 직접 보고 즐기며 쇼핑하는 ‘체류의 장소’로 변모 중이다. 핵심은 오프라인 강점을 극대화한 본업 경쟁력 강화다. 신선하고 값싼 식재료, 놀고 먹고 쉴 수 있는 공간이 가장 강력한 무기다. 소비자의 발걸음은 다시 마트로 향하고 있고, 그 공간은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되고 있다.

그랑그로서리 구리점은 지난 2021년 폐점 후 4년 만의 재출점이다. 전체 면적 90%를 식품에 할애한 특화 매장으로 입구에 들어서면 즉석조리식 ‘롱 델리 로드’가 30m 길이로 펼쳐진다. 구이, 보양식, 샐러드, 디저트 등 메뉴가 쏟아진다. 이어지는 냉동 간편식 특화존 ‘데일리 밀 솔루션’에는 피카드·니치레이 등 수입 제품을 포함해 총 500여종의 상품이 있다. 전국 롯데마트 중 가장 많은 숫자다. 정육·채소 코너도 고급·가성비를 함께 구성했고, 전통시장과 연계한 상생 채소는 시세보다 30% 저렴하게 판매한다.

스타필드 마켓 킨텍스점은 단순 상품 판매 공간을 넘어 ‘동선과 휴식’에 집중한 곳이다. 정문에 들어서면 436㎡(약 132평) 규모의 ‘북 그라운드’ 서재가 쇼핑몰처럼 구성돼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입점 매장을 배치했다. 특히 ‘올리브영’, ‘다이소’, ‘스타벅스’ 같은 선호도 높은 매장은 기존대비 최대 3배가량 면적을 넓혔다. 경북 빵집 ‘두낫디스터브’ 등 지역 최초 콘텐츠도 전면 배치했다. 2층엔 어린이와 가족 단위 고객을 위한 ‘키즈 그라운드’를 마련했고, 체류 대기 고객을 위한 휴식 공간도 곳곳에 녹여냈다.

두 매장은 공통적으로 ‘젊은 가족’을 핵심 타깃으로 한다. 구리점은 3040세대와 3~4인 가구 수요를 고려해 도시락·김밥·보양식 중심의 ‘집밥형 구성’에 초점을 맞췄다. 킨텍스점은 자녀를 동반한 방문객을 겨냥해 인기 브랜드 강화와 여유 공간 확보에 나섰다. 구리시와 고양시 모두 3인 이상 가구 비중이 전국 평균을 웃도는 상권이다. 마트는 다시 ‘온 가족의 외출지’가 되기 위한 진화를 본격화한 셈이다.

스타필드 마켓 킨텍스점의 메인 광장 격인 북 그라운드 전경. (사진=김정유 기자)
두 곳 모두 고객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한 전략적 설계가 돋보인다. 구리점 2층엔 키즈 전문관 ‘토이저러스’가 체험형 숍인숍으로 자리했고 예체능 강좌를 운영하는 ‘트니트니 플러스’ 문화센터도 직영으로 들어섰다. 오는 8월엔 프리미엄 초밥 뷔페 ‘고메 스퀘어’, 북카페형 복합 공간 ‘놀멘서가’도 문을 연다. 이마트는 지난해 8월 리뉴얼한 죽전 스타필드 1호점의 효과를 킨텍스점에서도 기대 중이다. 이마트에 따르면 죽전점은 리뉴얼 이후 10개월간 체류객(3~6시간 기준)이 163%, 매출은 36% 증가했다.

대형마트의 진화는 온라인 오프라인을 넘나들고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 4월 AI(인공지능) 장보기 앱 ‘제타(ZETTA)’를 도입하고, 구리점을 경기 동북부 핵심 피킹 매장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커머스가 제공하지 못하는 ‘체험과 신뢰’를 오프라인이 보완하고, 반대로 오프라인의 한계는 디지털 배송이 메운다는 복안이다. 이마트도 공간 혁신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스타필드 마켓도 이의 일환이다. 이마트의 30년 유통 노하우와 스타필드의 공간 기획력이 결합된 차세대 모델로 자리매김 중이다.

업계는 이같은 변화가 단순한 리뉴얼이나 출점 확대를 넘어, 유통 지형 자체를 재편하려는 실험이라고 본다. 이날 구리점을 직접 찾은 강성현 롯데마트·슈퍼 대표이사는 “경기 침체 속 단순한 가격 경쟁만으로는 더이상 고객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며 “이제는 상품의 차별화는 물론,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체험과 온라인 배송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플랫폼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