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협상에 '소고기 개방' 집착하는 트럼프…이유는?

경제

뉴스1,

2025년 7월 13일, 오전 06:0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 상호관세' 부과를 무기로 우리나라에 요구한 사안 중 하나가 바로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시장 개방이다. 한국의 다양한 비관세장벽 중에서도 유독 '소고기 시장 개방'에 집착하는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일차적으로는 거대 시장인 중국, 중남미에서 미국산 농산물이 밀려나면서, 아시아의 부유한 동맹국들이 대체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점이 배경으로 꼽힌다.

또한 미국산 소고기에 대해 대표적인 수입 규제국인 한국의 개방을 이끌어냄으로써, 이를 자국 내 정치에 활용하고, 나아가 비슷한 상황에 놓인 협상 대상국들과의 통상 협상에서도 주도권을 잡으려는 전략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보낸 '관세 서한'서 소고기 수입 월령 제한 콕 집어 지적
13일 통상당국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낸 '관세 서한'에서 당초 이달 9일로 예정됐던 한국산 수입제품에 대한 25% 상호관세를 8월 1일까지로 3주 더 연장하며, 한국의 비관세장벽 철회를 요구했다.

그는 서한에서 "미국의 무역적자는 한국의 관세 및 비관세 정책과 무역 장벽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양국 간 실효 관세율이 0%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실제 관심사는 '비관세장벽'에 맞춰져 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대표적으로 지목된 항목은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금지 해제'와 '쌀 시장 추가 개방'이다. 블루베리 등 과일류 검역 간소화,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승인 절차 단축 등도 요구 항목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콕 집은 이 같은 비관세장벽 문제들은 정부 입장에서도 확답하기 어려운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이다. 해당 사안들은 농민들의 생계와 직접 연결돼 있어, 정부가 내부 반발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이 2일(현지시간)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를 발표하고 즉각적인 시행에 돌입한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이번 상호관세 부과 발표를 이틀 앞둔 3월 31일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에는 30개월 이상 연령의 미국산 소고기 및 소시지와 같은 가공 소고기 제품 수입금지가 포함돼 있다. 사진은 2일 서울 한 대형마트 미국산 소고기가 진열된 모습. 2025.4.2/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韓, 이미 미국산 소고기 수입 1위 국가인데 왜?
트럼프 대통령이 '소고기 수입 개방'을 압박하는 배경에는 최근 중국·중남미 시장에서의 수출 부진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거대 시장에서 미국산 농산물 수출이 감소하면서, 미국이 대체 시장으로 한국·일본과 같은 아시아의 부유한 동맹국들을 대체 수출시장으로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한국은 이미 전 세계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산 소고기의 한국 수출액은 22억 2000만 달러로 전체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1위다. 뒤를 이어 △일본 18억 7000만 달러 △중국 15억 8000만 달러 △멕시코 13억 5000만 달러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한국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물량은 21만 4637톤으로, 1년 전(22만 9656톤)보다 6.5% 줄긴 했지만, 여전히 전체 소고기 수입량(44만 2133톤)의 44.3%를 차지하며 압도적으로 1위를 기록했다. 미국산 소고기는 8년 연속 전체 수입 소고기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재개된 2008년(3만 2446톤)과 비교하면 16년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물량은 무려 6.6배 늘었다. 수입 초기에는 광우병 우려로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컸지만, 시간이 지나며 저렴한 가격과 양호한 품질 등으로 선호가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미국육류수출협회가 한국갤럽과 실시한 '2024년도 하반기 소고기 소비자 인식 조사'에서도 '미국산 소고기는 안전하다'는 응답이 70.2%, '향후 미국산 소고기 섭취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69.6%로 나타났다.

지난 5월부터 미국산 소고기의 물량 공세는 더 거세졌다. 전미육류수출협회에 따르면, 5월 기준 미국의 대(對)한국 소고기 수출량은 2만 5228톤으로 전년 동월(1만8063톤) 대비 39% 늘었다. 이는 지난 2023년 3월 이후 2년 2개월 만에 최대치다.

반면 같은 5월 기준 미국의 대중국 소고기 수출량은 1398톤으로 전년 동월(1만 5659톤)보다 91% 급감했다. 중국이 미국과 무역 갈등 속에서 미국산 소고기에 147%의 초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도축장에 대한 수출 시설 허가를 제한한 영향이다.

전미육류수출협회는 "중국으로의 수출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의 수요 강화 및 확대는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별도 보고서에서는 "한국에 30개월 이상 된 소고기 등까지 팔게 되면 1억 1000만 달러에서 1억 7500만 달러의 추가적인 수익이 예상된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대표 규제국 韓…트럼프 압박에 문 열리나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소고기 시장 개방 압박은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를 위한 '대체 루트' 확보라는 전략적 목적과 함께, 주요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일종의 '본보기'를 보이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와도 무관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소고기는 미국의 대표적인 수출 경쟁 품목이다. 한국 시장에서의 규제 완화는 미국 농축산업계의 이익 확대와 연결되고, 이는 곧 트럼프 본인에 대한 지지 기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축산업계의 이해관계와도 맞물린다. 미 축산업계와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중국 등 주요 시장이 이미 '월령 제한' 조치를 해제한 점을 근거로 한국에도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19년 해당 조치를 공식 해제해, 현재는 소의 연령과 관계없이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고 있다. 중국과 대만 역시 월령 제한 조치를 해제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개방' 카드를 노골적으로 꺼내 들며 한국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관세를 철폐한 영국이나, 미국산 농산물 29억 달러(3조 9800억 원)어치를 구입하기로 한 베트남처럼 한국과 일본도 결국 농산물 시장의 빗장을 풀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이 대표적인 '비관세장벽'인 소고기 수입 제한 조치를 비롯해 각종 규제를 문제 삼으며 압박 범위를 넓히고 있다"며 "철강·알루미늄이나 자동차 등과 달리 농축산물은 소비자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인 만큼 국민 정서와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부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euni1219@news1.kr

이시간 주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