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국회미래연구원 원장은 지난 10일 이데일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당장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국내 석유화합 산업은) 반드시 공멸하게 될 것”이라고 섬뜩한 경고장을 날렸다. 특히 내년부터 에쓰오일의 10조원 규모로 투자하는 ‘샤힌 프로젝트’ 가동이 본격화하면 업체들의 도산이 현실화할 수 있는 만큼 연내엔 구조조정 방안을 확정, 내년부터 실행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기식 국회미래연구원 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김 원장은 불황에 빠진 국내 석유화합 업계가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김 원장은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공급 과잉 상황 속에서 중국 대비 가격 경쟁력을 상실했다”며 “사전적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 사후적 구조조정에 돌입하게 되면 훨씬 더 큰 비용과 고통을 수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긴급한 상황임에도 기업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고 정부는 새로운 정권이 출범한 과도기적인 상태여서 구조조정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며 “자칫하단 석유화학 산업도 해운업처럼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석유화학 구조조정 실현을 위해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범부처가 모여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결국 대통령실이 나서서 이 사안을 주도하지 않으면 산업 재편을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했다.
불황 장기화에 따라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하고 있어 정책금융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 원장은 “업체들이 설비 폐쇄 등으로 범용 석유화학 제품 생산 시설을 줄이면 자산이 감소해 부채비율이 올라가는 등 재무적 부담이 커진다”며 “채권단의 만기 연장 등 정책금융의 역할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구조조정의 출발점은 ‘기업들의 자발적 결단’이 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 원장은 “정부가 특정한 기업을 지정해 사업을 정리하라고 할 수는 없다”며 “각 기업이 먼저 생산 축소 등 구조조정 방안을 들고 와야 정부도 지원책을 마련할 수 있는데 현재는 기업들이 미온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들은 범용 제품 비중을 얼마나 줄일지, 가격 경쟁력을 어떻게 재고할지 명확한 대안을 가져와야 한다”며 “아직은 업계가 국회에 구체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제출한 바가 없다”고 부연했다.
특히 김 원장은 “석유화학 개별 업체가 아닌 각 기업 집단이 그룹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범용 설비를 넘기는 기업들이 직원들을 그룹 내 다른 계열사로 전환배치하는 등 인력 부담을 책임지려는 성의를 보여야 생산설비를 떠안는 기업 쪽도 의지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김기식 국회미래연구원 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중국을 상대로 값싼 범용 제품을 내다 팔며 성장해 온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은 중국이 2020년부터 제품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하며 수출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이에 범용 제품 비중을 줄이고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비중을 늘리는 것이 현실적인 구조조정 방향으로 거론된다.
김 원장은 일본 사례를 언급하며 “일본은 2030년까지 에틸렌 생산능력을 430만t 수준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라며 “한국은 내수만 따지면 150만~200만t이 적정 수준이고 수출을 감안해도 400만t 이상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현재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은 1500만t에 달한다.
그는 “결국 60~70% 가까운 감축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에서도 공유되는 인식”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인수합병(M&A)이 아니라 기업 간 합작법인(JV) 설립을 통한 단계적 통합이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제언했다.
최근 업계에서는 전남 여수·울산·충남 대산 등 3개 석유화학 산단별 기업들의 통폐합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공정거래법상 담합 우려 탓에 기업 간 통폐합 논의 자체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공정거래법상 시장점유율 합계가 해당 분야 1위가 되는 등의 경우엔 기업결합이 금지된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공정위가 석유화학 단지 통합을 담합으로 제재할 사안은 아니다”라며 “구조조정이 정책적 사안임을 설득하면 현재의 규제하에서도 충분히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