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협상 카드 된 쌀·소고기…국민 설득 없었던 정부에 반발

경제

이데일리,

2025년 7월 17일, 오전 05:05

[세종=이데일리 김은비 하지나 기자] 통상 당국이 농·축산물 수입 개방 확대를 미국과의 관세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을 두고 파장이 커지고 있다. 소고기 월령 제한을 풀 거나 사과 등 과일 시장을 개방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방안이 거론되면서다.

농업계는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등 즉각 반발에 나섰고, 여권 내부에서도 국민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는 중이다.



◇ ‘소고기 풀고 쌀 지키고, 과일 검역 속도’ 분석도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시한이 다가오며 정부는 곧 미국이 요구해온 비관세 장벽 완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할 전망이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4일 방미 일정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농산물 부분도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며 “우리가 지켜야 할 부분이 있지만, 그런 부분들을 지키되 그렇지 않은 부분들은 협상 전체의 틀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했다.

대미 협상 카드로 그간 미국이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농축산물 비관세 장벽 해소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은 매년 발표하는 무역장벽보고서(NTE)를 통해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제한 해제를 비롯해 △사과·배·감자 등 검역 절차 지연 △유전자변형농산물(GMO) 승인 절차 완화 △쌀시장 추가 개방 등을 언급해 왔다.

일각에서는 소고기 30개월 월령 제한은 풀고 쌀 시장은 지킬 것이라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거론된다. 기후변화로 국내 수급 불안이 심화하고 있는 과일류 검역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1993년 우리 정부에 사과 수입위험분석을 신청했다. 현재 8단계 가운데 2단계(수입위험분석 착수)를 마치고 3단계(예비위험평가) 진행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사과는 가격이 2배가량 뛴 ‘금사과 사태’로 사과 수입의 필요성이 제기된 만큼 국민을 설득할 명분도 있다. 미국산 사과가 한국 농가가 주로 생산하는 사과와 품종이 달라 농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종인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산 사과는 한국 농가에서 주로 생산하는 후지랑 품종도 달라, 한국 농가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농축수산업 반발 이어져…여당 내부서도 ‘우려’

그러나 농축산업계의 반발은 거세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산 농축산물의 5위 수입국으로, 한미 FTA 발효 이후 15년간 대미 수입은 55.6% 증가했다”며 “관세·비관세 장벽의 추가 해소 시 사실상 완전 개방에 가까워 국내 농업생산 기반의 붕괴마저 우려된다”며 농축산물 추가 개방 우려에 대해 강하게 목소리 높였다.

전국한우협회 역시 성명을 통해 “한미 통상 협상에서 농업 분야는 미국이 가장 큰 수익을 얻고 있는 분야”라며 “식량주권과 농업의 가치를 강조해온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에도 농민을 저버릴 것이냐”고 성토했다. 전국 최대 사과 주산지인 경북 농민들로 구성된 ‘경북 농민의 길’은 “미국 사과 수입 검토는 전국 최대 사과 주산지인 경북 농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선전포고와 다를 바 없다”며 검토 중단을 요구했다.

농업계뿐만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미국의 요구와 협상 상황에 대해 일부 제한적 보고만 받았을 뿐, 농산물 개방이 검토되고 있다는 언급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통상 교섭을 담당하는 인사가 왜 협상 상대인 미국이 아니라 국민을 먼저 설득하려 하느냐”며 날을 세웠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미국의 농산물 개방 압박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만큼 정부가 국민 합의를 이끌어낼 노력을 서둘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농축산물 개방은 워낙 민감하고 품목 선정부터 개방 방식,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 들여다볼 부분이 많다”며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협의를 했어야 하는데, 협상 시한을 코앞에 두고 일방 통보식으로 얘기하니 반발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국내 농산업 보호 대책 등을 통해 국민 설득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한호 서울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수입 개방을 하더라도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며 “수입이 불가피하다면 이미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수입사료 물량을 늘리는 등 대안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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