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투자증권은 최근 ‘시공의 다음장, 모듈러’ 보고서를 통해 한 연구논문을 인용, 모듈러 공법의 경제성을 이같이 분석했다. 대량생산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모듈러 공법의 특성에 따라 550여가구 이상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높은 직접 공사비를 간접 공사비 등으로 상쇄할 수 있을 것이란 게 IBK투자증권의 판단이다.
모듈러 주택의 필요성은 비단 이같은 경제성에만 있진 않다. 조정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건설업은 안전 문제, 인력 구조의 한계, 고정비 상승이라는 삼중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모듈러 공법은 이를 동시에 타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문제는 대량생산 체제 구축 등 시장 개화를 이끌 규제 개선이 요원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한 최근 한 건설업 관련 세미나에선 모듈러 주택 활성화와 관련 현 제도 현황 및 문제점 분석에서 무려 34개의 해결과제가 쏟아졌다는 전언이다. 과거 정부마다 스마트 건설 기술 육성을 기치로 내세웠지만 현재 모듈러 공법 관련해 여전히 기존 RC공법을 기준으로 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15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주택협회는 올해 핵심 과제로 ‘모듈러 주택 활성화’를 꼽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과 함께 국민적 인식 조성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LH는 올해 1000가구, 내년부터 2029년까지 매년 3000가구, 2030년 이후엔 매년 5000가구 규모 모듈러 주택 발주를 계획 중으로, 주택협회는 이를 적극 홍보하겠다는 복안이다.
지난달 초에는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공사)와 경기주택도시공사(GH), 인천도시공사(iH) 등 수도권 주택 관련 공사 공동으로 모듈러 주택 활성화를 위한 정책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민간·공공을 가리지 않고 모듈러 주택을 주목하고 나선 데에는 최근 국내 건설업계가 직면한 다양한 사회·환경·기술적 문제들을 해소할 새로운 대안으로 꼽혀서다.
모듈러 공법이란 ‘현장’에서 철근과 콘크리트를 직접 쌓아올리는 RC공법과 달리 현장 밖 ‘공장’에서 사전제작된 부재를 운송해 조립하는 방식이다. 사용되는 구조재에 따라 철강(강구조), 목조, PC(프리캐스트 콘크리트) 등으로 구분되며 건설업계에선 OSC(Off-Site Construction·탈현장건설) 또는 프리패브, 법적으론 ‘공업화 주택’으로 불리기도 한다.
모듈러 공법을 활용하면 △모듈화된 생산구조로 자재 단가를 낮출 수 있고 △공사기간 단축으로 인건비·일반관리비·현장간접비 등 절감 △공장기반 정밀시공으로 균일한 품질 확보 △현장 작업 최소화로 안전사고 방지 △숙련공의 수급 불안정 상황에서 제조업 방식으로 인력 대체 △건축 자재의 높은 재활용률로 폐기물 발생량 감축 등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모듈러 주택 시장이 개화한다면 공사비는 기존 RC공법과 유사한 수준이면서 공사기간은 무려 46%, 인력투입률은 40%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이란 GH 분석도 있다.
특히 도심 내 4층 이하 저층 주택 밀집지역을 비롯해 군부대, 병원, 학교, 기숙사, 임대상가 등 다양한 사회기반시설에 활용 가능해 건설업계에서도 새로운 먹거리로 대두헸다. 공사기간 단축으로 빠른 공급이 가능할 뿐더러, 특히 지방 인구감소 등으로 주택·시설이 불필요해질 땐 빠른 철거와 효율적인 건축 자재 재활용도 가능해서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다만 모듈러 주택 관련 정책은 아직 걸음마조차 떼지 못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을 필두로 모듈러 주택 전문 자회사를 보유한 GS건설, 최근 포스코에이앤씨로부터 모듈러 주택사업 부문을 인수한 유창이앤씨 등 건설사에 LH·GH 등 공기업, LG전자 등 가전업체에 철강사들까지 나서 시장 문을 두드리고 나섰지만 정작 정부는 현재 모듈러 주택 공급 현황을 살펴볼 관련 집계조차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다.
건설업계에선 모듈러 공법이 RC공법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는 점을 최우선 개선 과제로 꼽는다. 대표적으로 현재 설계와 시공을 분리해 발주토록 하는 분리발주 제도가 거론된다. 주택협회 관계자는 “모듈러는 설계부터 제작, 운송, 설치까지 연동 돼 이뤄지는데 현 제도에 따라 전기·정보통신·소방시설 등을 분리발주하면 비용과 공사기간 모두가 증가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사실상 사업이 불가능해진다”며 “예외 적용을 위한 법 개정 또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C공법을 기준으로 한 기본형 건축비를 모듈러 공법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도 개선점이다. 대량생산 체제가 채 구축되지 않은 현재 모듈러는 RC공법 대비 공사비가 20% 안팎 높은데, 여기에 공공발주 조차 기본형 건축비를 기준으로 책정된 공사비를 적용하면서 사업성이 더욱 악화되는 실정이어서다.
안전 등을 위한 건축 규제와 산업 육성을 위한 인센티브 간 균형감 있는 접근을 당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콘크리트 자체가 내화구조인 RC공법과 달리 철골 구조로 이뤄지는 모듈러 공법은 내화소재를 감싸고 덧입히는 추가 공정이 필요해 비용이 더 드는 구조”라며 “높이제한, 용적률, 건폐율 등 인센티브가 함께 도입돼야 사업성이 담보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국회에는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과 한정애 의원이 주택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한 상황이다. 공업화 주택 인정 대상에 준주택 포함, 높이제한·건폐율·용적률 제한 완화(15% 이하) 등을 골자로 하며 공업화 주택이란 법적 용어를 ‘모듈러 주택’ 또는 ‘조립식 건축주택’으로 바꾸는 방안도 담겼다. 지난달에는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철강협회와 함께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앞선 세 개정안과 병합심사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