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에선 ‘규제에 가로막힌 신사업’의 전형적 사례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모듈러 공법은 환경·안전·생산성 측면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건축방식이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기존 철근콘크리트(RC) 공법을 기준으로 한 각종 규제를 고스란히 적용하고 있어서다. 민간 건설사들은 물론 주택 관련 공기업까지 나서 규제 개선 필요성에 한목소리를 내는 배경이다.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 구시장 부지 복합화사업 조감도.(사진=현대엔지니어링)
15일 업계에 따르면 구로구는 당초 모듈러 공법을 적용하려던 가리봉 구시장 부지 복합화사업을 RC공법으로 변경 시공하는 방안으로 놓고 최근 서울시,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공사)와 고심을 잇고 있다.
이번 사업은 연면적 1만 8029㎡ 규모 가리봉 구시장 부지에 174가구 행복주택 조성을 골자로 한다. 공장에서 주요 부재 상당수를 사전 제작해 건설현장으로 운반 후 조립하는 모듈러 공법을 적용한 서울 최초 중고층(지상 12층) 공동주택 조성 사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다만 지난해 말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권을 내려놓으면서 공법 변경과 더불어 사업비 분담, 새로운 시공사 선정 여부 등 원점에서 사업을 다시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인허가 지연과 원부자재 가격 급등이 당장의 원인으로 꼽히지만, 건설업계에선 애초에 모듈러 주택을 둘러싼 각종 규제 개선에 요원한 현실이 더 큰 문제라는 업계 지적이 나온다. 상당수 건설사들은 다소간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신사업 투자 차원에서 모듈러 주택 사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이에 발맞춘 규제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시장 개화는커녕 안 그래도 낮은 사업성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포스코이앤씨는 최근 자회사 포스코에이앤씨 건축사사무소의 모듈러 주택사업 부문을 유창이앤씨에 매각하기도 했다. 포스코에이앤씨는 2012년 국내 최초 모듈러 주택인 ‘청담MUTO’ 준공을 시작으로 다수의 실적을 쌓아온 국내 대표적 모듈러 주택 기업이었지만, 결국 더딘 시장 개화에 전면 철수를 선언하기에 이른 셈이다.
정부가 모듈러 주택 시장 개화를 위해 규제 개선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내화 기준 등 건축 규제 개선 및 합리화 △높이제한, 용적률, 건폐율 등 인센티브 도입 △모듈러 특성을 반영한 적정공사비 확보 △감리, 지급자재, 분리발주 등 제도적 애로사항 해소 등 다양한 개선안 제안이 잇따르고 있다.
김진성 SH공사 수석연구원은 “미국과 영국, 일본, 중국 등은 모듈러를 저비용 공법이 아닌 새로운 주택공급수단으로 보고 있다”며 “사회, 환경, 물리적 이슈 등 다양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모듈러 공법을 정책수단으로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